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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 지역의 의료공백 현상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공중보건의사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산부인과가 없는 의료 취약지인 인구 4만의 함양군이 의료공백 해소 귀감 사례로 떠오르고 있다. 함양군보건소 산부인과에 전문의가 부임하면서다.글 박정희 사진 김정민·함양군 서울 출신 산부인과 전문의, 무연고지 함양에 가다 지난 2021년 3월 함양군보건소 산부인과에 의학박사 정두용 전문의가 부임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건국대 충주병원에서 30여 년을 재직한 그는 함양군보건소에서 산부인과 전문의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단박에 도시 생활을 접고 함양으로 향했다. “산부인과는 특성상 응급상황이 많습니다. 지난 30여 년을 병원에서 늘 긴장하며 보냈기에 몸과 마음도 많이 지쳤었지요. 해서 다른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살아오면서 의사로서 충분히 혜택을 많이 입었기에 이 고마움을 사회에 환원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연고는 없었으나 함양에 터 잡는 게 어렵지 않았다. 알고 보니 젊은 날 지리산 종주할 때 잠시 머물렀던 곳이기도 했다. “필봉산 자락에 집을 구했습니다. 매일 1시간가량 걸어서 출근하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상림 숲길을 산책하며, 계절별로 피는 들꽃을 감상하는 여유도 넘치지요. 고운 최치원 선생, 일두 정여창 선생 등 내로라하는 함양의 역사 인물의 발자취를 짚어가는 것도 일상의 큰 즐거움이 됐습니다.” 임신부 산전 검사 진료부터 어르신들 질병 치료까지 함양군보건소 산부인과에서 정 전문의가 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다. 외래진료, 모바일 헬스케어(보건소 중점사업 중 하나인 일반인 건강 상담), 예방 접종전 문진 등. 외래진료는 평일 오전·오후에 걸쳐 임신부의 산전 진찰과 일반 부인과 질환 진단·검사, 어르신들의 비뇨기계 질환의 진료와 처방 등을 주 업무로 한다. 지난해에는 군청 중점사업인 면 단위 의료 소외지역을 찾아가 어르신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상담역할을 하는 건강 버스도 운영했다. 함양군 주민의 만족도가 높다. 4월 초 기준 함양군 등록 임신부는 31명인데, 이 중 22명이 보건소 산부인과에 등록해서 진료하고 있다. 함양군보건소에서는 간단한 1차 진료를 할 정도의 초음파기기를 구비하고 있고, 부인과 암 검사와 일반 및 몇 가지 특수 혈액 검사도 가능하다. 때문에 등록 임신부는 다른 시군으로 멀리 가지않고 요 임신반응검사부터 임신초기 검사, 1·2차 기형아검사와 임신 막달 검사까지 모든 검사와 진료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무료 혜택 보다 더 큰 것은 자신이 사는 곳 가까이에 전문의가 있다는 든든함이 주는 정신적 안정감이다. 정 전문의는 임신부 외에도 부인과 질병으로 고생하는 고령의 어르신(2022년 기준 약 770명)과 청소년의 건강도 돌보고 있다. “힘닿는 데까지 봉사…지역사회 찾는 의료인 늘어나기를”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전세도 아니고, 빈집 수리도 아니라 아예 집을 구입해서 함양에 정착한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할 때까지 함양에서 살 거라고 했다. “함양군이 보다 많은 젊은이가 찾는 멋진 삶의 터전이 되어 인구도 늘고 지역의 경제도 활성화되길 바랍니다. 저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또 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인정받을 때까지 이 지역에서 머물 것입니다. 언젠가는 이 지역 주민을 위한 공립병원이 세워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리고 젊은 의사들이 인구가 많은 지역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막을 도리가 없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다만 지역에 연고를 두고 계신 의료인들은 훗날 삶의 목표를 어느 정도 이루었을 때, 부모님과 일가친척들에게 조금이나마 은혜에 보답한다는 의미로 지역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준다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정두용 전문의 약력- 서울대 의대 졸업, 고려대 의학박사 취득- 건국대학교 의과대학 근무(조교수, 부교수, 교수)- 건국대학교 충주병원 근무(교수, 병원장, 자문 교수)- 건국대학교 충주병원 퇴임(2021년 2월)- 함양보건소 산부인과 진료 의사 부임(2021년 3월) 츨처: 경남공감 https://www.gyeongnam.go.kr/gonggam/index.gyeong?menuCd=DOM_000001508000000000&gg_depth1=02&gg_depth2=03&ggSeq=40081&ggVolumeAndNewOldStatus=122%3ANEW
23.05.04.휴머니스트 박윤규 치과원장
따뜻한 봄을 맞아 따뜻한 사람 '기부왕'을 물색했다.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경남아너소사이어티(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 클럽) 91호인 치과의사를 추천했다. 알 만한 사람은 많이 아는, 칭찬이 자자한 사람이다. 그의 재능기부 스토리를 취재했다. 글 박정희 사진 유근종 철도청 부기관사가 치과의사 된 사연 3월초 창원시 마산회원구 회원2동 박윤규(치의학 박사) 치과를 찾았다. 박 원장이 사람 좋은 웃음으로 맞아준다. 치과 내 벽에는 그의 기부이력, 수상이력이 빼곡하다. 도움을 받은 환자가 감사 선물로 건넨 그림도 걸려있다. 3남 4녀 중 차남으로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1981년 서울 용산에 있던 철도고로 진학했다고 한다. 졸업 후 철도청 서울기관차사무소 부기관사로 발령, 마침내 꿈을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4개월 째 근무하던 1984년 7월, 인생이 바뀌는 사고를 당했다. 근무 중 열차에 치여 오른쪽 무릎아래 다리를 잃은 것이다. 두 번의 대수술과 100일의 재활치료. 어지간한 사람 같으면 잃은 다리에 집착하고, 낙담했을 법하다. “재활과정은 고통스러웠으나 거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었습니다. 보조기구를 차고 몸의 균형을 되찾기까지 어렵게 치료를 마쳤습니다. 퇴원 후 서울에서 부산까지 전국여행을 하며 스스로에게 다짐했죠. 가치 있는 새 삶을 살자고.” 대학입시에 도전, 원광대 치의예과에 들어갔고 6년 공부 끝에 의사면허를 땄다. 개업장소를 물색하다 누나가 살던 창원으로 정했고, 회원2동은 그렇게 제2의 고향이 됐다. 경남아너소사이어티 91호, 26년 간 해외 의료봉사 … 기부 또 기부 박 원장의 기부 내용을 들어보면 기부왕이라는 표현보다 인류애가 넘치는 ‘휴머니스트’라는 표현이 차라리 더 적절하다 싶다. 오랜 기부의 행로에 접어든 계기는 치과 개업 후 종교단체 주최 캄보디아 해외의료봉사에 참여하면서였다. 치료 차례를 기다리던 소년이 자신 앞에서 딱 줄이 끊겨 낙담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안에 잠자던 ‘인류애’가 ‘깨어났다’. 1997년부터 사비를 털어 다닌 해외봉사만 스리랑카, 베트남, 미얀마 등 10여 개국이 넘는다. 26년째 연 4회 매년 1억 원 이상의 사재를 들여 매회 300명 이상을 치료하고 있다. 대단하다. 힘들지는 않을까. “힘들면 못 하겠죠. 이런 직업이어서 얼마나 축복인지 모릅니다. 제 능력이 닿는 한 마음껏 도울 수 있으니까요. 흥미로운 건 봉사를 하러 다닐수록 더 행복하다는 점이죠.” 기부는 기부를 낳는다. 그의 해외봉사는 의료봉사를 넘어 이젠 생필품 후원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7년부터 섬 지역 주민을 찾아 봉사하고 있다. 창원 송도·양도, 통영시 사량도 등 주민 1000여명 이상을 치료했다. 회원2동 지역주민을 위한 봉사는 물론이다. 동네 경로효도잔치에 2013년부터 2000여 만 원씩 8회 후원했고, 2021년부터는 치과 뒤편에 ‘옹달샘’을 만들어 임항선을 산책하는 주민에 500ml 생수 1200병을 매일 기증하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법무부 교정위원으로 위촉되면서 재소자 치과진료도 하고 있다. 단순치료만이 아니다. 더운 여름 500ml 얼음생수 2만 병을 네 차례 공급하며 불쾌지수로 힘들어하는 재소자 정서까지 챙겼다. 이외도 보훈 가족 지원, 코로나19 당시 의료진 지원, 결식아동 지원, 군 부대 지원 등 일일이 헤아리기만도 숨찰 정도로 기부 릴레이를 하고 있다. “다문화센터 어린이도 챙길 예정…건강 허락하는 한 기부” 그는 기부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 지금까지 한 것도 모자라 올해부터는 다문화센터·도교육청과 협약을 맺어 다문화센터 학생의 치아를 진료하고 있다. 기부는 언제까지인 것일까. “제가 가진 재능으로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봉사를 다녀보면 재소자든, 외국인이든 모두 다 그냥 아픈 사람일 뿐이라는 점에 공감하게 됩니다. 편견을 거두는 게 중요합니다. 저의 재능이 사람과 사람사이를 좀 더 낫게 하는 다리역할을 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멈추지 않을 겁니다.” 출처: 경남공감https://www.gyeongnam.go.kr/gonggam/index.gyeong?menuCd=DOM_000001508000000000&gg_depth1=02&gg_depth2=03&ggSeq=39991&ggVolumeAndNewOldStatus=121%3ANEW
23.04.03.지난해 발달장애 화가와 변호사가 드라마에 등장하며 잔잔한 감동을 자아냈다.“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처럼, <경남공감>도 그 마을에 온기를 더하고 싶다.다름의 경계를 허물고 커피처럼 일상으로 스며든 청년 예술가의 꿈과 이야기를 전한다.글 김미영 사진 유근종 점이 그림이 되기까지, ‘만 번의 법칙’ 드립 커피 봉투 그림에 시선이 멈춘다. 뜯어 버리기 아깝다 싶어 ‘painted by 한음’ 정보를 검색해보니 발달장애 작가 작품이다. “한음이가 요즘 스트레스가 많아 인터뷰가 쉽지 않을 텐데요. 그래도 괜찮으시면 오십시오.” 아버지 박진훈(52) 씨 동의를 구하고, 양산시 중부동 ‘꿈꾸는 공방’을 찾았다. 어머니 박영경(52) 씨가 일기, 종이접기, 그림, 가정 통신문 등 한음 씨의 21년 인생을 펼쳐 보인다. “한음이가 점과 점을 이어 하나의 선을 완성한 순간, 가슴이 벅차올라 만세를 불렀어요. 더디지만 10번, 100번 반복하다 보면 결국 해내더라고요.” 어머니는 ‘만 번의 법칙’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했다. 다양한 경험 통한 꿈 찾아주기 프로젝트 생후 40개월쯤 자폐성 장애 진단을 받은 박한음(21) 씨. 5살 되던 해, 교육 불가능 통보를 받고 부모님은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부모표 교육’이다. “드럼 스틱도 못 잡으리라 생각했던 녀석이 리듬을 타고, 피아노도 유명한 곡만 찾아내요. 가르칠 때 애를 먹었는데 외발자전거를 탄다니까요. 하하.” 한음 씨 성장 영상을 보여주며 자랑이 끊이지 않는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꿈을 찾아 나선 한음 씨는 드럼·피아노·색소폰 연주에 등산·스케이트도 즐기는 만능 재주꾼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늘 궁금했어요. 그림을 통해 초록색을 좋아하고, 밤과 개를 무서워하는 걸 알게 됐죠.” 어머니는 그림으로 아들과 소통하며, 그 꿈을 이뤄 주려고 애를 썼다. 덕분에 한음 씨는 지난해 개인전도 선보인 작가로 성장했다. ‘땅속에 묻힌 빛나는 보석’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어우러지는 세상 됐으면 라포(Rapport·상호 신뢰 관계)가 형성된 활동 보조 선생님과 함께 앳된 모습의 한음 씨가 등장했다. 배꼽 인사를 건넨 후 곧바로 그림 그리기에 몰두한다. 낯선 이의 방문에 불안해할까 봐 사진작가도 조용히 그 모습을 담는다. 화폭에 옮긴 나무, 들꽃, 카페 등 일상이 화려한 색감과 과감한 터치로 살아난다. 사계절을 표현한 나무는 입체파 거장 ‘파블로 피카소’를, 화려한 색감의 카페는 후기 인상파 대표주자 ‘빈센트 반 고흐’를 연상케 한다. “아직 일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정도예요. 세상에는 한음이보다 훨씬 재능있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이 아이들이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부부는 아들 작품에 겸손한 평가를 하며 발달장애인에 대한 편견 없는 시선을 부탁한다. 부모의 역할, 자립할 수 있는 터전 마련 부부가 생각하는 부모의 역할은 관찰과 재능 발견, 환경 조성, 지지와 격려, 귀 기울임, 기다리기, 일관성이다. 유아교육 전공자임에도 절망했다는 어머니는 전문기관과 지역사회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전한다. 발달장애인 부모의 바람은 자녀가 직업을 갖고 자립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는 것이다. 부부는 발달장애인 직업교육과 자립을 위해 ‘꿈꾸는 공방’을 열었다. 커피 드립백·그림·공예품 등을 제작하여 판매하고, 수익금은 발달장애인들의 직업교육과 프로그램 개발에 쓰인다. 주변의 따뜻한 격려 속에 지난달 고등학교를 졸업한 한음 씨는 올해 텃밭을 가꾸는 농부 화가로 변신할 예정이다. 이런 다양한 경험이 예술적 감수성 성장의 자양분으로 거듭나고, 언젠가는 홀로 탄탄하게 자립할 수 있기를 응원해본다. 출처:경남공감(https://www.gyeongnam.go.kr/gonggam/index.gyeong?menuCd=DOM_000001508000000000&gg_depth1=03&gg_depth2=02&ggSeq=39942&ggVolumeAndNewOldStatus=120%3ANEW)
23.03.07.해마다 산불이 일어나고 있다. 기후 변화로 대형화 추세까지 보이고 있다.산불의 위험성은 누구나 공감하면서도 정작 산불 피해 지역이 산불 발생 당시 어느 정도로 고통받았는지, 또 이후 얼마나 황폐해진 환경이 진행되는지 잘 모른다.지난해 5월 31일, 밀양시 부북면에서는 경남 단일 지역으로 최대 규모의 산불이 났다.산불에 특히 유의해야 하는 계절을 맞아 이곳을 찾아 최초 신고자와 주민을 만났다.글 박정희 사진 김정민·경남도 이례적 초여름 산불, 축구장 900여 개 이상 규모 면적 불타 2022년 5월 31일 밀양시 부북면 춘화리 산 13-31일대 산에서 불이 났다. 부북면, 상동면 일대 7개 마을 주민 수천 명이 대피했다. 산림당국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나흘만인 6월 3일 주불 진화는 완료됐다.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피해 면적은 660.82ha에 달했다. 축구장(7140㎡) 900개 이상 규모에 달하는 산림이 불탔다. 수개월에 걸쳐 산불 원인 조사가 이뤄졌지만 이후 오랫동안 조사받던 주민이 숨졌을 뿐, 주민들은 명확한 원인을 알지 못했다. 참혹했던 당시 생생한 증언…아직도 끝나지 않은 피해 지난달 1일 만난 김진오(54) 화산마을 이장과 박재현(41) 새마을지도자, 손태윤(52) 마을 임원은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전하며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할 재난이라고 입을 모았다. “청소를 하다가 우연히 산을 봤는데 옥교산(해발 538m) 중턱에서 연기가 나더군요. 얼른 신고했죠. 당시 산림당국도 나름대로 빨리 대처했으나 발화지점이 산중턱이니 진화차량이 진입할 수 없었어요. 게다가 당시 밀양은 몇 개월간 비가 오지 않아 매우 건조했고, 바람도 거세 순식간에 불이 번졌습니다. 40년간 불 난 적이 없는 이 일대의 비극이 시작됐습니다.”(김진오) “살면서 그런 광경은 처음 봤습니다. 불길이 500m씩 이 능선 저 능선으로 날아다니더군요. 최초 진화대가 출동하기 전 5부 능선이 다 탔더라니까요.”(박재현) “인명피해가 없다고 알려졌지만 당시 마을 초입까지 불이 나서 민가와 축사 모두 위험했습니다. 특히 마을 뒤 대나무숲에 불이 옮겨붙으면 정말 큰 일이라고 생각해서 마을청년회가 중심이 돼 밤새 물통을 지고 나르며 물을 뿌렸습니다. 정말 잠 한숨 못 잤습니다.”(손태윤) 소나무 군락 잿더미, 죽어가는 나무들, 산사태 위험 현장을 보여달라고 했다. 마을회관 위에서 바라본 옥교산은 화마가 할퀴고 간 상처가 선연했다. 불탄 산림의 뼈대만 앙상했다. 차를 타고 마을 인근을 돌았다. 멀미가 날 정도로 차량 한 대도 오가기 힘든 길이었다. 산 초입 소나무 밑동이 시커멓다. 이런 나무들은 결국 죽는다고 한다. 귀촌한 어느 양봉농가는 당시 불길에 휩싸여 정말 위험했는데, 자체적으로 뚫어놓은 지하수 관정 덕분에 생명의 위협은 피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벌은 죽어 나갔고 재산 피해는 막대했다. 그나마 이렇게 마을입구까지 불이 번졌는데도 인명피해가 없었던 건 주민들의 숨은 노력 덕분이었다. “청년회 중심으로 자치대를 만들었죠. 시청직원과 산불전문예방진화대, 산림청 소속 특수진화대는 주불 진화 후에도 잔불을 잡기위해 남았는데, 그분들한테 배워서 밤새 물을 공급하고 물을 뿌렸습니다. 마을마다 있는 비상 급수전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불이 나면 결국 물이 문제인데 소방차량이 싣고 오는 물은 한계가 있거든요. 당시에도 마을의 비상 급수전에서 1톤 물통에 일일이 물을 실어 날라 도움이 됐지요.”(김진오) “산불은 생태계 위협…임도 확보 절실” 당시 마을 주민들은 지리를 모르는 진화대원을 위해 안내를 도맡아했다. 특히 18명의 청년회는 상황 전파조, 물 싣는 조, 불 끄는 조로 나눠 뛰어다니느라 쉴 틈이 없었다. 그야말로 숨은 공로자였다. 김 이장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불은 비극적이었으나 당시 정말 많은 분들이 도움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지금은 산사태 사방공사도 이뤄지고 있고, 행정안전부가 이곳을 주목해 ‘산불에 강한 마을가꾸기 사업’에도 선정될 것으로 보여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될 듯합니다. 아쉬운 점은 임도 확보입니다. 보셨다시피 마을마다 자체적으로 불을 끌 수 있는 기본 장비는 있습니다. 결국은 접근성입니다. 첨단 장비도 중요하지만 차량 2대가 교행할 수 있는 길만 있어도 산불예방과 조기진화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출처:경남공감(https://www.gyeongnam.go.kr/gonggam/index.gyeong?menuCd=DOM_000001508000000000&gg_depth1=03&gg_depth2=02&ggSeq=39942&ggVolumeAndNewOldStatus=120%3ANEW)
23.03.07.코로나 팬데믹과 기후 위기 시대, 대자연과 공생을 꿈꾸는 박봉기 생태주의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자연과 혼연일체가 되어 ‘호흡’하는 작가가 건네는 메시지에 귀 기울여 보자.글 김미영 사진 김정민 30여 년간 작품 활동…제31회 동서미술상 수상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주택가 골목에서 단발머리가 어울리는 박봉기(57) 작가를 만났다. 반지하 작업실 입구에는 대나무가 한가득 쌓여있다. “최근 대나무를 엮은 작품을 선보이다 보니 대나무 작가로 알려져 있어요. 그러나 쓰러진 나무, 돌, 흙, 볏짚 또는 문명에 의해 버려진 것들에 관심을 두고 각각의 물성과 시간성을 탐색해 재료를 골라요.” 박 작가는 진해의 드넓은 자연환경 속에서 보낸 유년 시절의 기억이 생태주의적 세계관을 자리 잡게 했다고 한다. 박봉기의 예술은 자연 재료에서 출발해 인간과 자연의 어우러짐을 지향한다. 국내외를 넘나들며, 30여 년간 활동을 이어온 그는 지난해 창원시 주최 ‘제31회 동서미술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노동집약적 조형, 짜릿한 카타르시스 박 작가의 대나무 조형은 극도의 노동집약적 방식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담양의 질 좋은 대나무를 51-1.jpg맹종죽, 왕대, 일반대 등 종류별로 선별하여 사용한다. 대나무를 쪼개 얼기설기 엮어 장인정신이 깃든 작품을 완성하는데 대형작품은 2~3개월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재료를 만지고, 다듬고, 엮으며 접촉한 경험을 통해 자연과 깊이 교감하며 그 가치를 형성해낸다.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노동자나 농부의 마음으로 한 땀 한 땀 집중하다 보면 번잡함을 잊고 무아지경에 이르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돼요”라며 작품 할 때 힘이 펄펄 난다는 박 작가다. 잔잔한 말투와 몸짓마저 예술혼 분출을 위한 에너지를 비축하고 있는 듯하다. 음악감상을 즐기는 그는 커피 내리는 솜씨도 수준급이다. 고달픈 예술가의 삶 중 잠시 카페를 운영했던 경험 덕분이란다. 작품명 ‘호흡’으로 대중과 호흡 맞춰 구조적 견고함과 유려한 미적 가치를 지닌 작가의 작품은 크고 작은 공간을 만들어 낸다. 관객은 그 공간을 드나들며 자연을 온몸의 감각으로 호흡하며 느껴볼 수 있다. “어린 시절 숨어들었던 개나리 넝쿨, 대나무 숲, 바닷속 등 타인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혼자만의 공간이 주는 안락함이 있어요.” 작가는 이러한 경험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자 작품을 쉼터로 제안한다. 작품은 공간을 포함한 설치 형태의 건축적 조형으로 완성되며, 주변 환경과 평온한 어울림을 만들어 낸다. “‘호흡을 맞추자’라는 말이 있죠? 어디에서건 조화롭게 열려있는 작품으로 지친 현대인들의 안식처,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호흡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박 작가의 작품명 대부분이 ‘호흡’인 이유다. 프랑스 시골 마을 등 국내외 야외 전시 계획 의외의 공간에서, 느낌대로 현장 재료를 활용해 작품을 완성하고 자연적으로 소멸하는 과정을 선호하는 박 작가는 야외 전시의 해방감을 즐긴다. 올해 계획된 국내외 초청 일정으로 2월 진주 진양호 공원 ‘상상의 숲’ 작품 제작, 4월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 전시와 6월 프랑스 시골 마을 숲속 전시, 하반기 창녕 ‘우포자연미술제’ 등이 있다. 자연환경 예술에 대한 국내의 관심과 인식이 향상되긴 했지만, 국외 일정을 통해서도 배우는 것이 많다는 그는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도 하고 있다. 사라져가는 시골의 자연 속에 예술 공간을 조성하고 싶은 작가의 오랜 꿈이 실현되는 그 날이 기대된다. 박봉기 작가 작업실위치 창원시 의창구 사림로 57번길 25문의 010-3846-2780
23.02.01.